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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안시성 대표 포스터
    영화 안시성 대표 포스터

     

     

    목차
    1.  영화 안시성 치열했던 그날의 스토리

    2.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실제 역사정리

     

     

    영화 안시성 치열했던 그날의 스토리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던 당나라황제 이세민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이에 고구려의 대막리지였던 연개소문은 15만의 병력을 보내 주필산에서 이세민을 상대하도록 명령합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병력차로 인해 많은 고구려군이 섬멸당합니다. 대막리지인 연개소문은 자신에게 반기를 들어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양만춘을 몹시 싫어합니다. 그리하여 사물을 안시성으로 보내 양만춘을 암살하라 지시합니다. 안시성에 들어간 사물은 양만춘을 암살하기 위해 고구려군으로 위장하게 됩니다. 당시 안시성은 평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당나라군과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수의 병력을 이끌고 안시성에 도달한 이세민은 안시성을 공격합니다.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고 안시성의 고구려군은 사력을 다해 당나라군에게 저항합니다. 그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당황한 이세민과 당나라군은 곧바로 군사를 물리게 되고 고구려군은 첫 승리를 자축합니다. 이 전투에서 양만춘의 리더십에 감명을 받은 사물은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평양성에 지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그 시각 이세민은 안시성을 점령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실행합니다. 그것은 바로 안시성 앞에 안시성보다 더 높은 토산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안시성보다 더 높은 토산을 완성한다면 그것을 밝고 안시성으로 진격하여 성을 점령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많은 수의 군사에게 명령하여 토산을 쌓는 것을 완성한 이세민은 안시성을 함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크게 기뻐합니다. 그리하여 고구려군과의 전투 이전에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쉬게 합니다. 토산이 완성된 것을 본 양만춘과 고구려군은 크게 위협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당나라군이 쉬는 틈을 활용해 토산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양만춘은 토산을 무너뜨릴 인원을 모집합니다. 그리하여 우대를 포함한 일반 백성들이 선발되게 됩니다. 우대는 토산을 지탱하는 나무목에 화약을 설치하여 폭발시키려 하지만 물에 젖은 탓에 폭발시키는데 실패합니다. 그래서 최후의 방법으로 나무목을 도끼로 베어버리게 되고 우대와 그의 동료들은 작전을 성공한 후 전사하게 됩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지반이 크게 무너지고 당나라군이 당황한 사이에 양만춘과 고구려군은 토산을 점령합니다. 자신들이 힘들게 축조한 토산을 빼앗긴 당나라군은 크게 격분하여 진격하고 마지막 전투가 시작됩니다. 불에 태운 수레를 활용하는 등 안시성을 지키기 위해 고구려군은 격렬히 저항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양만춘은 유물처럼 내려온 각궁을 사용하려 합니다. 이 각궁은 성인 남자 3명이 당겨도 당겨지지 않을 정도로 사용하는데 엄청나게 어려운 각궁이었으나 사용만 가능하다면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양만춘은 사력을 다해 각궁을 당기고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각궁을 발사합니다. 발사된 각궁은 당나라 황제 이세민의 눈에 적중하고 큰 부상을 입은 이세민은 말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황제를 잃은 당나라군은 곧바로 안시성에서 퇴각하기 시작하고 고구려군과 양만춘은 승리하며 영화는 마무리되게 됩니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실제 역사정리

     

     

     

     

    영화 안시성의 모티브가 된 안시성전투는 645년 수십만의 당나라 군대에 맞서 고구려를 지켜낸 양만춘과 안시성 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7세기 한반도는 3국으로 나뉘어 전투 중이었습니다. 여기에서 3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의미합니다. 그중에서 고구려는 예전의 높은 위상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남쪽으로는 신라에게 한강을 빼앗기고 서쪽으로는 당나라에게 압박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쿠데타가 일어나 왕이 죽고 왕권이 약회 되게 됩니다. 고구려의 왕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은 행정과 군사권을 총괄하는 대막리지라는 관직을 만들고 스스로 그 자리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 시각 당나라의 이세민은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내부결속을 위해 고구려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세민은 친중국적인 성향을 가진 영류왕을 죽였다는 명분으로 연개소문을 벌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이세민은 수십만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로 향합니다. 엄청난 대군으로 고구려의 개모성과 요동성을 함락하고 비사성까지 함락하며 안시성 주변 성들을 정복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안시성은 적을 방어하기 위한 엄청난 요새였습니다. 당시 안시성은 앞에는 요하강이 흐르기에 적을 방어하기에 편리하고 강유역의 곡창지대를 통해 군량미도 보급할 수 있어서 자연이 만든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이곳의 성주인 양만춘은 연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정권을 차지하던 그때 그에게 협력하지 않고 저항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고구려군의 지원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나라 이세민의 군대가 성을 함락하기 위해 전투를 시작할 때 양만춘의 안시성은 정말 잘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 연개소문의 군사를 이긴 경험이 있던 안시성의 주민들은 높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성주였던 양만춘의 뛰어난 리더십이 그들을 결속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주 양만춘을 중심으로 안시성의 주민들은 88일 동안 당나라군의 군대를 막아내게 됩니다. 이러한 시간이 지날수록 당나라 태종은 답답해져 갔고 결국 안시성을 점령하기 위해 새로운 작전을 세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안시성보다 더 높은 토산을 쌓아 안시성을 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토성을 완성하기는 하지만 토성이 무너지게 되고 그곳을 곧바로 고구려군이 점령하면서 계획은 실패로 끝이 납니다. 또한 당시 요동반도는 겨울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고 88일 동안 긴 전투로 군량이 바닥나게 됩니다. 결국 태종은 요동반도의 추위에 쫓기며 안시성의 점령을 포기하고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그 후 전쟁에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태종은 죽기 전 많은 신하들에게 다시는 고구려와 전쟁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걸로도 유명합니다. 안시성이 만약 함락되었다면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만춘을 비롯한 안시성주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하여 당나라 황제 이세민을 막아냄으로써 고구려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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