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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목차

    1. 1979년 12월 12일 그날의 실제역사정리


    2. 하나회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인물들  vs  하나회의 결말


    3. 영화를 리뷰한 소감 & 영화의 TMI

     

    1979년 12월 12일 그날의 실제역사정리

    문득 영화 서울의 봄을 보다 보면 어떻게 투스타인 전두환이 하루 만에 대한민국의 정권을 잡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1979년 12월 12일 그날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려드리려 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에서는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대한민국의 제5-9대 대통령) 대통령은 최측근이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차지철(당시 대통령 경호실장)과 함께 암살당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 권력 최상층에는 격변이 일어났습니다. 일인자인 대통령, 이인자인 대통령경호실장, 3인자인 중앙정보부 부장이 한 번에 사라지는 권력공백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남은 정보기관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 보안사령부였는데 이곳의 수장이 바로 전두환(당시 보안사령관)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순식간에 대한민국의 권력 최상층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급하게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고, 대한민국에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암살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졌는데 그곳의 총책임자로서 전두환이 임명되게 된 것입니다.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전두환은 곧바로 자신을 주축으로 하는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육군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이러한 움직임을 못마땅해하는 인물이 바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입니다. 그는 전두환이 이끄는 하나회가 육군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자 , 이를 축소시키기 위해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직에서 경질하고 권력과는 먼 곳으로 보내려 합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이미 육군 속에 퍼져있던 하나회멤버들에 의해 전두환에게 알려지게 되고 크게 위협을 느낀 전두환은 직속상관인 정승화를 체포하여 무력화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일집잔치라고 불리는 정승화체포작전입니다. 생일집잔치로 불리는 이 작전이 시행되었던 긴박했던 9시간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바로 '서울의 봄'입니다. 전두환은 대통령 암살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근처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내통했다고 가짜 명분을 만듭니다. 그 후 하나회 소속 수도권 주요 지휘관들과 접촉하여 정승화 체포작전을 모의합니다. 12.12일 거사 당일 전두환은 연희동 요정에서 연회를 열어 정승화의 측근들(수경사령관 장태완, 특전사령관 정병주)들을 초대해 대기시켜 두고, 합수부 측 헌병 65명을 출동시켜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난입해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를 불법체포하게 됩니다. 그 후 정승화는 합동수사부의 차량에 강제로 태워져 서빙고 대공분실로 끌려가게 됩니다. 동시에 대통령의 허가를 받기 위해 직접 최규하 대통령의 공관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바로 허가하지 않고 국방장관 노재현과 논의 후 검토하기로하며 허가를 거부했습니다. 대통령의 재가 거부로 인해 전두환은 상관을 불법연행한 반란군이 되었고 위기를 느낀 그는 노재현 국방장관을 찾아오라 부하에게 명령하게 됩니다. 같은 시각 연회에 초대되어 있던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불법체포소식을 듣게 되고 곧바로 부대에 복귀해 브리핑을 받게 됩니다. 그 후 장태완수경사령관은 합수부 측에 전화를 걸어 (반란군 놈들 거기 있어라, 내가 전차를 끌고 가 너희들을 쓸어버리겠다)  엄포를 놓았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반영될 정도로 엄청난 임팩트를 가진 순간으로 현재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위기를 느낀 전두환과 하나회 일원들은 대통령의 허가를 다시 얻으러 가지만 결국 거절당하고 무력으로 육군을 점령하려 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을 출동시키려 하지만 합동수사본부의 방해공작 때문에 두 개 부대는 결국 출동하지 않게 됩니다. 육군지휘부는 하나회에 장악당하지 않았던 마지막 특전사부대인 9 공수를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시키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하나회측은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9 공수여단이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부대여서 서울 도착까지 1시간이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회 측은 궁지에 몰리게 되고 마지막 묘안을 짜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공격중지협정 즉 '신사협정'이었습니다. 육군지휘본부는 북한의 도발위험도 존재하니 국군끼리의 유혈사태만은 막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결국 신사협정에 동의하게 됩니다.

    결국 서울로 진격하던 9 공수여단은 부천 IC에서 회군하게 되고, 서울을 지킬 수 있었던 마지막 카드는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한숨을 돌린 하나회측은 13일 자정쯤 3 공수여단을 출격시켜 특전사령부에 있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고 그를 지키던 비서실장 김오랑소령을 살해하게 됩니다. 그 후 1 공수여단을 출격시켜 행주대교를 건넌 뒤 육군본부 및 국방부를 유혈 점령하고 그곳에 숨어있던 국방장관 노재현을 연행해 가게 됩니다. 이제 하나회의 반대 측에는 수경사 하나만 남게 되었습니다. 수경사의 사령관이었던 장태완은 남은 행정병 1개 중대와 함께 반란군 측에 끝까지 저항하려했으나 이미 자신의 부대마저도 반란군 측에 넘어간 상황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 결국 장태완 수경사령관마저 진압을 포기하고 자신의 집무실로 되돌아왔고 새벽 3시 40분경 합수부군에 의해 수경사까지 점령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9시간 동안의 군사반란은 반란군의 승리로 돌아갔고 반란군을 진압하려 했던 육군지휘부와, 장군들은 체포되어 연행됨으로써 길고 길었던 그날의 밤이 마무리되게 됩니다.

     

    하나회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인물들  vs  하나회의 결말 

    하나회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대표적인 인물들의 결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내란방조죄를 적용시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4성 장군에서 이등병으로 강등시켜 불명예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경사령관 장태완장군은 보안사에 끌려가 45일 동안 모진 고초를 겪게 되고 강제예편당하게 됩니다. 모두가 도망친 가운데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끝까지 지켰던 김오랑 소령은 하나회와 대치하다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아내는 평소 시력약화증을 앓고 있었는데 남편의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결국 실명하게 됩니다. 김오랑소령의 아내는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지만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추락하여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하나회와의 대치도중 팔에 관통상을 입고 반란군에게 연행되게 되고 그곳에서 고초를 겪은 뒤 강제예편당하게 됩니다. 그 후 장태완수경사령관에게 미래에 오늘의 역사를 밝히자 약속하지만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게 됩니다. 하나회의 반대 측에 섰던 인물들은 12.12 군사반란 이후 불명예스럽고, 힘든 삶을 산 반면 군사반란을 성공시킨 하나회측 인사들은 모두 높은 직위에 오르며 잘 살아가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하나회의 대장이었던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 서리,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거쳐 대한민국의 제11대, 12대 대통령이 되고,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노태우는 내무부장관, 12대 국회의원을 거쳐 전두환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이 되게 됩니다. 나머지 반란에 가담했던 하나회 인사들도 국회의원, 국방부장관 등 국가의 각종 요직에 앉게 되고 김영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대한민국을 손에 쥐게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에 봄이 오길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기대했으나 이들의 반란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하고 다시 군부독재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영화를 리뷰한 소감 & 영화의 TMI

    영화 서울의 봄은 12.12군사반란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기대에 걸맞게 영화는 긴박했던 그날의 9시간을 세세히 잘 다뤄 주었고, 그날을 연기한 명품배우들의 열연으로 인해 깊게 집중할 수 있는 영화였다 생각합니다. 영화를 리뷰하고 그날의 역사를 알아가면서 답답하고, 화가 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과거의 잘못된 역사는 숨기는 게 아니라 올바르게 직면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영화에 숨겨진 여러가지 TMI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전두광역할의 황정민 배우는 과거 그가 출연했던 연극 리처드 3세가 캐스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나오는 리처드 3세의 명대사가 있는데 '나는 악인이 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김성수 감독은 곧장 황정민을 찾아가 캐스팅을 요청했는데 황정민은 그에 대해 악의 끝판왕을 보여주겠다며 흔쾌히 캐스팅을 수락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는 황정민배우의 분장입니다. 황정민 배우는 실존인물과의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가발만 5개를 사용하였고, 콧방울을 붙여 코평수를 넓혔으며 평균 2시간 30분의 특수분장을 영화 촬영마다 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는 그날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당시의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하여 사건당시의 해의 각도나, 빛의 광질까지 영화에서 재현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일반적인 영화작업에서 사용하는 영화용 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가로등, 실내등 등의 불빛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마지막장면인 화장실장면에서 감독은 인간의 욕망을 배출하는 가장 원초적인 공간인 화장실을 활용하여 전두광의 권력욕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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