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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명량의 대표 포스터

    목차

    1. 명량해전 전 조선의 상황


    2.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었던 <명량> 줄거리


    3. 해외 인사들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

     

     

    명량해전 전 조선의 상황

    명량해전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명량해전이 발생하기 전 조선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명량해전의 이전 전투인 한산대첩에서 조선의 수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로 인해 일본군의 전쟁계획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전라도를 차지하여 그곳에 10만의 원군을 파견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전라도가 함락되었다면, 그곳을 통해 10만의 원군이 평양으로 진격했을 것이고 조선은 완전히 무너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국의 영웅인 이순신이 있었기에 그것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한산대첩으로 인해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군에게 해전금지령을 내렸고, 조선수군에 대한 열세를 뼈아프게 인정해야 했습니다. 조선수군과의 전면전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일본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간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요시라라는 간첩으로 두어 이상한 정보를 조선에 흘리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조선의 국왕인 선조에게 정보를 흘렸습니다. 그 정보의 내용은 일본이 곧 공격을 하니 이순신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선조는 그 계략에 빠졌고, 이순신에게 공격을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일본의 수작을 미리 알고 있었고 전력을 다하지 않는 등 선조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선조는 이순신을 질책하였고, 원균 또한 장계를 올려 이순신의 파직을 부추겼습니다. 결국 이순신의 명성이 높아져가는 것을 두려워한 선조는 이순신을 파직시키게 됩니다. 그 죄목으로는 첫 번째 조정을 속이고 임금을 업신여긴 죄, 두 번째 적을 쫓아 치지 아니하여 나라를 등진 죄, 마지막으로 남의 공을 가로채고 남을 죄로 빠뜨린 한없이 방자하고 거리낌이 없는 죄 등이 있습니다. 파직을 당하게 된 이순신은 곧바로 압송되어 모진 고초를 겪게 되었습니다. 조선은 이순신의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를 원균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기대와는 달리 원균은 칠천량해전을 통해 조선의 수군을 궤멸시키게 됩니다. 칠천량해전이란 1597년 8월 27일 조선에서 일어난 해전으로 임진왜란 역사상 최악의 패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전투로 인해 조선의 수군은 거북선이 3척 침몰하고, 조선수군 1만 명이 궤멸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이 전투로 인해 자신감이 올라가게 되고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재침략을 명령하게 됩니다. 이것은 훗날 정유재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위기감을 느낀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킵니다, 하지만 선조는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원균때와는 달리 이순신에게는 차가웠습니다, 결국 이순신은 선조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혼자 칠천량해전으로 궤멸되어 있던 조선의 수군을 규합하게 됩니다. 이순신은 전라도를 돌아다니며 수군을 규합했지만 13척의 판옥선만 얻게 됩니다.

    그렇게 이순신은 13척의 판옥선과 군사들을 활용해 몇백 척의 일본군을 상대로 명량해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었던 <명량> 줄거리

    영화 명량은 1597년 10월 25일에 발생하였던 명량해전을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입니다. 당시 13척의 판옥선과, 조선수군을 규합한 이순신은 선조로부터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에게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글을 선조에게 보내며 싸우기를 다짐했습니다. 이순신은 명량해전을 펼칠 장소를 부하 장군들과 함께 고민합니다, 고민 끝에 전투를 진행할 전장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곳은 울돌목이었습니다. 울돌목은 배가 항해할 수 있는 폭이 120m 정도로 매우 좁은 지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해협들 중 물살이 가장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순신은 적은 병력으로 적을 막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곳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순신은 과거 칠천량해전으로 인해 부하들의 사기가 약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부하들을 모아놓고 깊은 결의를 다짐으로써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려 노력했습니다, 이순신의 노력으로 조선수군은 진도 벽파진에 진을 치고 일본을 기다립니다. 그러자 마침내 구루시마 미치후사를 지휘관으로 하는 일본수군이 진격하게 됩니다. 일본의 출전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판옥선을 이끌고 그들을 섬멸하기 위해 출전합니다. 출전 전 이순신은 민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변 피난민들을 피신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을 택하지 않고 이순신 곁을 머물려 했습니다. 그래서 이순신은 그들을 근처 산 위에  머물라고 했으며 그들은 그곳에서 명량해전을 지켜보게 됩니다. 출전한 이순신은 각 장수들에게 일자진을 명령하고 일본군을 기다립니다. 적들이 울돌목으로 다가오자 이순신은 진격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전라우수사 김억추의 배가 겁을 먹고 노젓기를 중지한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의 배들도 겁을 먹어 출전을 거부하게 됩니다. 결국 이순신의 대장선만이 일본군을 향해 출전하게 되었고 구루시마의 직할함대 133척과 전투를 치르게 됩니다. 이순신은 울돌목의 물의 흐름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울돌목의 물의 흐름은 아침에는 역류였다가 정오부터 순류로 바뀝니다. 그렇기에 정오까지 버티다가 순류로 바뀌면 아군에게 유리하기에 치고 나가 기세를 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겁을 먹은 부하들로 인해 처음부터 엇나가게 됩니다. 적장 구루시마는 한조에 20척으로 편성을 해서 이순신의 대장선으로 보냈습니다. 빠른 기동력을 가졌던 세키부네를 활용하여 돌진하자 이순신은 화포로 그들을 저지했습니다. 몇 척은 그렇게 침몰시켰지만, 나머지의 배들이 돌격하여 이순신의 대장선에 배를 갖다 대었습니다. 세키부네는 삼면에서 일제히 갈고리를 던져 판옥선에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조선수군의 공포감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판옥선은 세키부네보다 몸체가 크고 높아서 기어오르기가 쉽지 않았고, 명량의 거 센물살로 인해 전형을 잡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이순신은 함포의 포신을 밑으로 내리고 조준사격을 해서 일본을 방해했습니다. 이순신이 이끌던 대장선의 맹렬한 저항을 뒤에서 지켜본 조선수군은 이순신이 초요기를 활용하여 도움을 요청하자 그때서야 거제현령 안위의 판옥선을 시작으로 지원하게 됩니다. 영화에서 이때부터가 이순신이 홀로 싸우지 않게 된 시작점으로 묘사됩니다. 전투를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정오가 되었고 물살이 바뀌는 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조선 수군이 역류였지만 지금부터는 일본 군이 역류를 맞게 된 것입니다. 역류를 맞은 일본군은 부서진 잔해들로 인해 전열이 흐려졌고, 이때 이순신의 판옥선은 순류를 타고 함포사격을 전개하게 됩니다. 이들은 용감하게 함포사격 및 전투를 진행했고, 왜선들은 부서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전투 중 적장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사망하게 됩니다. 이순신은 일본군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그를 참수하여 배머리 위에 매달게 했습니다. 그것을 본 일본군은 두려움에 떨게 되고 전투의지를 상실하게 됩니다. 대장이 죽으면 전투의지가 사라지는 일본군의 심리를 잘 활용한 것입니다. 결국 일본군은 퇴각을 시작합니다. 이를 본 조선함대는 압도적인 승리로 일본군의 기세를 눌러버리기 위해 추격전에 나섭니다. 추격전에 나서며 나머지 일본군의 전함을 파괴했고 이 전투는 조선수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해외 인사들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

    이순신은 압도적인 전투를 펼치고 나라를 구한 영웅인만큼 해외 많은 인사들이 그를 극찬했습니다. 그에 대한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일본 해군의 사상가인 사토 데쓰타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가장 경모 하는 장수는 이순신이다. 영국의 넬슨 제독의 명성이 아무리 높다고 하지만 이순신의 인격과 천재성에서 그를 필적할 수 없다고 이순신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장군인 버나드로 몽고메리의 평가를 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전쟁의 역사에 이순신을 호의적으로 평가해 놓았습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전략가이자 탁월한 자질은 지닌 지도자였다고 극찬합니다. 또한 이순신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구한 영웅이자 , 거북선과 같은 혁신적인 전함을 만든 기술혁신가로 평가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영국의 해군준장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의 평가를 보겠습니다. 그는 이순신이 서구 역사가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의 공적으로 보아 위대한 해상지휘관들 중에서 맨 앞줄을 차지할만하다 하며 그를 극찬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일본 해군의 영웅 제독인 도고 헤이하치로의 평가를 보겠습니다. 그는 청일전쟁 당시 청국 군함을 격침시키고 쓰시마 해전을 승리로 이끈 제독으로 알려집니다. 그는 이순신에 대해 나를 영국의 넬슨제독에 비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순신에게 비유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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