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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와키자카 야스하루 그는 누구일까? 2. 영화 <한산>의 줄거리 3. 학익진전법 총정리 |
와키자카 야스하루 그는 누구일까?
영화 한산에서 이순신과 조선수군의 적이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큰 피해를 주었던 용인전투를 이끈 일본의 장수입니다. 용인전투는 8만의 조선군이 1600명의 왜군에게 대패한 전투입니다. 그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가 이끈 전투인 용인전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1592년 음력 4월 13일 조선시대 최고의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파죽지세로 북상한 일본군은 4월 14일 부산을 시작으로 하루 만에 동래를 정복합니다, 그 후 기세가 오른 일본군은 상주, 충주를 거쳐 5월 2일 한강방어진까지 단숨에 정복합니다. 그로 인해 조선의 왕 선조는 한양점령 2일 전 피란길에 올라 한양을 떠나게 됩니다. 당시 조선의 국민들은 믿었던 왕이 피란길에 오르자 목놓아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선조는 피란길에 올랐지만 일본은 선조를 잡기 위해 빠른 속도로 북상합니다. 동시에 보급로가 끊어질 것을 걱정한 일본군은 1600명의 군대를 남겨 한양과 지금의 수원일대를 지키게 합니다. 한양에는 1000명이 배치되고 수원에는 600명이 배치됩니다. 이때 일본군의 후방병력을 지휘하고 있던 일본의 장수가 바로 와키자카 야스하루입니다. 당시 조선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는 임금을 지키고 한양을 탈환하기 위한 근왕군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들의 숫자는 약 8만 명 정도로 당시 일본군의 수를 훨씬 능가했습니다. 8만의 조선군은 평소 훈련을 받은 정예군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일념으로 뭉쳐졌습니다. 8만의 조선군이 일본군이 지키고 있던 수원 일대에 나타났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수에 당황한 일본군은 겁을 먹게 됩니다. 그리하여 일본군은 수원을 포기하고 용인 문소산 쪽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조선군은 1592년 음력 6월 5일 선발대를 용인으로 출격시킵니다. 조선군이 용인에 도착하지만 일본군은 전투를 하지 않고 대기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한양에 있었던 자신들의 지휘관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조선군은 이를 보고 자신감을 얻어 일본군을 압박해 나갑니다. 하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시야확보가 어려웠습니다. 그리하여 조선군은 소강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자신의 군대에게 깃발을 들게 하여 숨어있던 일본군을 깨웁니다. 그리고 그들은 근왕군의 측면을 공격합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움직이자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본진 왜군들 역시 움직입니다. 그들의 급습으로 인해 조선군은 장수들을 잃고 혼비백산합니다. 결국 조선의 선발대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조선군은 용인 서북쪽에 있는 광교산 근처로 부대를 퇴각시킵니다. 다음 날 6월 6일 아침 퇴각한 조선군은 아침식사를 위해 아침밥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는 말발굽소리가 들립니다. 와키자카의 군대가 기습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조선군은 많은 병사를 잃게 되었고 병력에 큰 손실을 입은 채 도망치게 됩니다. 숫자만 믿고 기세등등하던 조선군들은 결국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부대에 괴멸되게 됩니다. 조선에서 큰 승리를 얻게 된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훗날 이순신과 해전에서 대결합니다. 하지만 한산도대첩에서 처참히 패배하게 되고 그 후 무인도에 숨어 지내게 됩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무인도에서 미역을 먹으며 버틴 것으로 알려집니다. 몇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후손들은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한산도대첩이 일어난 그날에는 미역을 먹는 풍습을 지킨다고 합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조선수군의 수색이 끝나고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게 됩니다.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그 뒤의 권력을 사로잡기 위해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생합니다. 이때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에서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영화 < 한산>의 줄거리
영화는 이순신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약 16만의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하게 됩니다. 일본군은 단숨에 부산진과 동래성을 장악하며 북상합니다. 그리하여 20여 일 만에 한양은 함락되게 됩니다. 일본군의 기세에 놀란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되고. 육지에서의 패전이 계속됩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은 계속하여 승리하게 되고, 많은 주민들이 그를 찾아가게 됩니다. 이순신은 옥포, 합포, 적진포, 사천 등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계속 승리합니다. 이로 인해 일본군은 바다를 통한 보급이 막히게 됩니다. 이것은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일본군의 자랑인 육군을 통해 조선을 정벌하려면 어떻게든 바다를 통해 육지로 병력을 이송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순신의 존재가 그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격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예부대인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부대를 필두로 수군을 규합해 조선정벌을 명령하게 됩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임진왜란 중 용인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장수입니다. 명령을 받은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견내량에 머물고 있었고 이순신은 통영 당포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적들이 견내량에 있다는 첩보를 받은 이순신은 적들을 포위하여 완전히 괴멸시킬 수 있는 전법 학익진을 구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진법은 원균을 비롯한 많은 장수들이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 진법을 고집하게 되고 영화에서 왜군포로들을 이용하여 실제 같은 훈련을 진행하게 됩니다. 빠르게 다가오는 일본군의 배를 저지하기 위해 이순신은 거북선을 선봉에 세우게 됩니다. 이 거북선은 일본군에겐 공포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은 거북선을 해저괴물 복카이센이라 부르며 두려워하게 됩니다. 거북선을 통해 이순신은 학익진에 꽃을 피우게 됩니다. 영화애서 이순신은 장수들을 불러 모아 적들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순신에게 크게 당했던 일본의 수군은 그를 조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전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유인작전은 실패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기에 많은 장수들이 쉽사리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때 어영담이라는 늙은 장수가 유인작전에 지원하게 되고 영화에서 유인작전은 시작됩니다. 어영담의 함대는 견내량에 머물러 있던 일본군을 자극합니다. 그들은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와중 뱃머리를 돌려 일본군을 유인합니다. 용인전투에서 기세가 올라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런 조선수군을 얕잡아보고 연합작전을 무시한 채 돌격합니다. 폭 180m 높이 4km의 좁은 견내량을 지나자 그들은 한산도 앞바다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선함대는 일제히 학익진을 펼치게 됩니다. 빠른 속도를 지닌 일본군의 배들은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함포로 무장하고 있던 조선수군에 의해 하나둘씩 무너집니다. 일본함선들이 침몰하던 와중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순신의 배를 보고 월선하려합니다, 하지만 거북선이 나타나 그를 저지하게 되고 그는 화살을 맞고 바다로 빠지게 됩니다. 이 전투로 인해 일본 수군의 주력을 거의 격파함으로써 바다를 통한 보급과 육상으로 진격하려던 일본군의 계획은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이순신의 조선함대가 조선의 영토에 머물러있던 나머지 일본군함을 침몰시키는 장면을 보여주며 영화 한산은 마무리되게 됩니다.
학익진전법 총정리
이순신은 일본의 주력함선보다 크고 단단했던 조선의 판옥선이 아군을 지켜주는 튼튼한 성벽이 되길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학익진을 연구하고 실제 전투에서 사용하게 됩니다. 학익진은 U자형으로 적을 포위하여 공격하는 전술입니다. 육상전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된 전술이지만 해상전투에서는 이순신이 처음 도입하게 됩니다. 학익진에는 장점과 약점이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약점을 먼저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적을 포위하다 아군의 대열이 얇아지게 된다면 측면이 뚫리게 되어 적에게 후방이 노출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빠른 배로 돌진하는 일본 수군을 적시에 포격하지 못하면 백병전에 강한 일본군들에 의해서 아군이 위험해진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좁은 지형을 가진 곳에서는 적을 포위할 정도의 학익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점으로는 잘 사용한다면 아군을 지켜줄 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백병전에 강한 일본군이 판옥선에 올라타는 것을 미리 포격하여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던 이순신은 이것을 보완합니다. 그는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원균의 부대를 규합한 뒤 실제와 같은 훈련으로 단련시킵니다. 이순신의 학익진은 평소에는 첨자진을 유지하며 진격하다가 적이 보이고 전투를 하게 되면 날개를 펼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2열 횡렬로 학익진을 펼치는 것이 포인트로 알려집니다. 이순신의 학익진은 1열이 제자리 선회를 하면서 포를 쏘고 빠지면, 그 뒤에 있던 2열이 교대로 나서 포를 쏘았습니다. 이는 전후좌우 사방 포격이 가능하고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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