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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화속으로> 대표포스터
    영화 포화속으로 대표포스터

     

     

    목차

    1. 영화 포화속으로 줄거리 요약정리


    2. 영화 <포화속으로>의 모티브가 된 포항여중전투

     

     

    영화 포화 속으로 줄거리 요약정리

     

    포항을 지키는 전선에서 강석대 대위는 오장범을 중심으로 71명의 학도병들을 소집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소총 1자루와 250여 발의 총탄을 지급합니다. 긴급한 상황인 만큼 그들에게 훈련을 진행하지는 못했고 격전지에서 전투경험이 있는 오장범을 대장으로 선발합니다. 그리고 강석대 대위는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떠나게 됩니다. 그 시각 북한의 부대는 국군의 눈을 피해 포항으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박무령이 이끄는 북한의 766부대는 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포항의 앞까지 진격에 성공했고 최소무장으로 강을 건너 진격합니다. 그 시각 장범은 학도병들을 모아 훈련시키려 하지만 갑조 패거리들이 반항합니다. 장범과 학도병들은 부족한 물자를 보충하기 위해 뒷산 창고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소정의 총탄과 총을 발견하고 하산합니다, 하산하던 와중 숨어있던 북한군에 의해 총격을 당하고 갑조의 친구가 전사합니다. 이에 격분한 갑조는 그 북한군을 사살하기 위해 이성을 잃고 뛰어가고 그를 지원하기 위해 수많은 학도병들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학도병들을 섬멸하기 위해 북한군이 매복하고 있었고 이내 많은 수의 학도병들이 공격당하게 됩니다. 뒤를 공격하는 갑조의 활약으로 매복해 있던 북한군을 섬멸하지만 많은 수의 학도병들이 죽고 다칩니다. 교전이 있고 며칠 뒤 766부대의 박무령은 생포한 학도병들을 데리고 장범이 지키는 학교로 방문합니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항복을 권유합니다. 많은 수의 학도병들이 전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박무령의 제안을 고민하고 있을 때 갑조가 또 한 번 분열을 조장합니다. 이 모습을 본 장범은 크게 분노하고 갑조와 싸우게 됩니다. 이로 인해 갑조는 그의 친구와 함께 부대를 이탈합니다. 장범은 부대를 재정비하고 박무령과의 전면전을 준비합니다. 장범의 리더십으로 인해 학도병들은 저마다의 결의를 가지고 하나가 되어 전투를 준비합니다. 박무령은 자신의 항복권유를 수락하지 않은 학도병들을 공격합니다. 많은 수의 인민군이 학교로 진입하고 학도병들과 격렬한 전투가 시작됩니다. 그 시각 강석대 대위는 학도병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사령관을 설득하여 포항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차를 잡을 수 있는 무기들을 비롯하여 무장한 채 내려오며 학도병들에게 무전을 날립니다. 하지만 무전이 연결되지 않았고 그들에게 큰 전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학도병들은 열심히 항전했으나 압도적인 전력차 때문에 조금씩 밀리고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학도병들이 후퇴하고 있을 때 이탈한 갑조가 등장하고 전세가 반전됩니다. 갑조는 부대를 이탈한 뒤 북한군으로 위장하여 북한군의 무기를 빼돌렸고, 이후 무기를 챙겨 학교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갑조와 장범은 극의 마지막에 마음을 하나로 뭉치는 데 성공하고 전우가 되어 북한군에게 항전합니다.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만 학도병들은 서서히 무너지고 희망을 잃어갑니다. 그때 강석대 대위가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 학도병들을 도와주러 학교에 도착하고 그들을 지원합니다. 박무랑은 패배의 위기에 빠졌지만 장범에 대한 복수심으로 끝까지 진격하여 갑조의 목숨을 빼앗습니다. 그 후 장범과 마주치게 되고 그들은 서로에게 총격을 가합니다. 장범이 죽을 위기에 처할 때 강석대대위가 뒤따라와 박무랑을 사살하지만 이미 장범은 총에 맞은 상태였고 결국 생을 마감하며 영화는 끝이나게됩니다.

     

    영화 <포화 속으로>의 모티브가 된 포항여중전투

     

    지금부터 영화 포화 속으로의 모티브가 되었던 1950년 8월 포항여중에서 결사항전한 71명의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71명의 학도의용군들은 전국각지에서 모여진 병력이었습니다. 그들은 포항여중전투 이전에 소집되었고 포항여중전투이전에도 크고 작은 전투들을 해나갔습니다. 그들은 실전병력으로 북한군에 맞서 싸우는 임무보다는 국군을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로 시작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그들이 모두 고등학생으로 묘사되지만, 사실은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나이가 다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줄 대장을 직접 선출했고 그 후 훈련에 임하게 됩니다. 그들은 정규적으로 훈련을 받은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미숙했습니다. 사격훈련은 물론 제식까지 모든 훈련을 잘 받지 못했고 그나마 한번 받은 훈련은 정규군인 1명이 야간에 겨우 가르친 것이 다였다고 전해집니다. 학도병들은 포항여중에서 소총 1자루와 250발의 총알을 지급받습니다. 포항여중에는 학도병들과 약간의 병력이 전부였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유는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인해 많은 수의 병력이 방어선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그 후 북한군은 포항여중을 점령하기 위해 20명의 정찰대를 보냅니다. 정찰대는 포항여중 근처를 수색하지만 매복해 있던 학도병들과 전투를 하게 되고 결국 정찰대 전원이 사망합니다.

    북한군은 새벽 6시 포항여중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하고 한 시간 이후에는 포격까지 진행합니다. 한편 포항여중에서 학도병들이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는 사이에 국군의 후방지휘소 및 많은 수의 피난민들이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학도군들과 소정의 국군병력은 그사이 포항여중에 고립되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건 격렬한 저항을 하기 시작합니다. 북한군은 이들을 회유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복대신 총구를 당겼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됩니다. 학도병들은 적은 수의 총탄과 무기로 인해 금세 힘이 빠지게 되지만 북한군에게 백병전을 전개하는 등 끝까지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하지만 많은 수의 북한군을 이겨내기란 어려웠고 결국 48명이 전사하고 4명이 실종되었으며 나머지인원들은 전부 포로가 됩니다. 포로가 된 학도병들은 북한의 수용소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북한의 주민으로 전향할 것을 권유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총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사형일이 다가오자 학도병들은 깊은 불안감에 빠지지만 얼마 뒤 미국의 포격이 일어나고 진격해 온 국군 속에 숨어들어 8명의 학도병들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전해집니다. 포항여중전투에 참여한 학도병들은 정규적으로 교육을 받은 군인은 아니었으나, 그에 비등하게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 덕에 많은 수의 국민들이 피난길에 올라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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