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영화 노량의 대표 포스터
    영화 노량의 대표 포스터

     

     

     

    목차

    1. 영화 노량의 에피소드

    2. 이순신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들

    3. 판옥선 vs 왜선 비교하기

     

     

     

    영화 노량의 에피소드

     

     

    영화 노량의 에피소드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영화 노량의 주요배경은 노량해전을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노량해전은 일본의 시마즈 군, 명나라의 저장성부대, 조선수군이 참여한 해전입니다. 즉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총 동원하여 전투를 펼친 해전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1598년 8월 일본군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 소식은 바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것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우두머리가 죽으면 모든 전쟁의지를 잃어버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전쟁의지를 잃은 일본군은 본국으로 돌아가길 바라고 조선에서 도망치려 합니다. 조선군은 지난 몇 년 동안 조선의 땅을 유린한 일본군을 쉽게 보내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군은 도망가는 일본군을 섬멸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 계획은 이순신장군의 마지막 해전으로 알려진 노량해전으로 이어집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일본은 후계자를 둘러싼 치열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에 고립되어 있던 일본의 선봉장 고니시는 명나라 제독인 진린에게 많은 뇌물을 주며 일본으로의 귀환을 도와달라 요청합니다. 뇌물을 받은 명나라 제독 진린은 포위를 풀게 되고 고니시는 도망갈 기회를 노리게 됩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이순신의 조선함대는 그들을 쉽게 보내주지 않았고, 결국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고니시는 알게 됩니다. 고니시는 자신의 병력만으로는 이순신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본장수를 불러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가 요청한 장수는 시마즈 요시히로로 조선에서 악명 높은 일본의 장군으로 알려집니다. 그 이유는 조선의 함대가 궤멸했었던 칠천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장수가 시마즈였기 때문입니다. 시마즈는 고니시의 도움요청을 수락하게 되고 500여 척의 대함대가 이순신의 조선함대를 향해 다가갑니다, 이순신은 시간을 지체하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기에 명나라 제독인 진린에게 출정을 도와줄 것을 요청합니다, 뇌물을 받은 진린은 망설이지만 끝내 이순신의 요청을 수락합니다. 조선과 명나라의 함대는 매복하며 시마즈의 일본 함대를 기다립니다. 아침이 밝기 전 새벽 시마즈의 함대는 노량해협을 건너게 됩니다. 시마즈의 함대를 보자 조선과 명나라의 함대는 일제히 공격합니다. 쏟아져 나오는 일본의 함선에 조선과 명나라의 수군은 일제히 화포를 퍼부었습니다. 많은 배들이 부서지고 일본군의 선봉대는 무너지게 됩니다. 하지만 숫자로 일본군은 밀고 들어갑니다. 지난 이순신의 해전은 원거리 포격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근접 전의 형태가 보입니다. 이곳에서 물러서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왜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게 됩니다. 전투 중 일본군은 명나라 함대에 빈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시 등자룡이라는 명나라의 장수가 판옥선에 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선의 화포를 잘 다루지 못하는 초보였습니다. 결국 오발사고를 발생시키고 일본군이 등자룡의 배를 점령하게 됩니다. 등자룡은 일본군에 의해 전사하고 배 또한 점령당합니다. 돌아갈 곳이 없었던 일본군은 끝까지 저항합니다. 그러다 해협을 겨우 탈출하지만 관음포라는 곳에 고립당하게 됩니다. 일본군의 고립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절호의 기회라 생각합니다. 그는 진린과 함께 관음포로가 일본군의 퇴로를 막아섭니다. 고립된 일본군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면 희망이 사라지기에 맹렬히 저항합니다. 시마즈의 함대가 이순신에게 파괴되어 갈 때 고니시는 자신의 함대를 이끌고 도망가게 됩니다. 일본군은 조총을 활용하여 조선의 장수들을 공격합니다. 대장이 죽으면 사기를 잃어 도망치는 풍습을 가진 일본군이기에 가능한 전략이었습니다. 일본군은 조선장군들을 향해 조준하였고 낙안 군수 방덕룡, 이영남 등이 전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함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순신마저 탄환에 맞게 되고 전사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이순신이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부하들에게 전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죽음이 아군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쳐 적들을 섬멸하는데 지체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순신의 전사소식은 대장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됩니다. 맹렬한 전투 끝에 많은 일본전함이 파괴되었지만 적장 시마즈는 살아서 도망치게 됩니다. 노량해전은 일본군의 500여 척의 함선중 450척을 파괴하는 결과를 거두게 됩니다. 반면 조선의 판옥선은 4척만 파괴되었기에 일본을 상대로 엄청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조선수군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남아있는 일본의 왜선들을 파괴합니다. 그 후 영화의 마무리 부분에서 조선수군은 이순신의 전사소식에 통곡하게 되고, 그의 시신을 운구하는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이순신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들

     

    이순신의 죽음에는 많은 음모론이 존재합니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첫 번째는 의도적 죽음설에 관한 내용입니다. 당시 조선에서 이순신장군은 왕인 선조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조는 국민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간 상황이었기에 많은 국민들은 왕보다 이순신을 더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땅으로 떨어진 자신의 신임을 복구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기에 전쟁영웅들을 많이 압박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의병장이었던 김덕령장군입니다. 김덕령장군은 전국에서 의병들을 모집하여 일본군에 대항해 열심히 싸웠습니다, 하지만 억울하게 역모에 연루되어 모진고문을 받게 됩니다. 그는 결국 감옥에서 옥사하게 됩니다. 선조는 이순신을 백의종군시키는 등 이순신의 명성을 꺾어놓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순신은 다른 전투에서 승리하여 그의 부하와 국민들에게 칭송받게 됩니다. 

    이순신은 당시 이러한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기에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후 의도적으로 죽음으로써 자신의 후손들에게 미칠 후환을 없앴다는 가설이 존재합니다. 두 번째는 노량해전에서의 생존설입니다. 그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고 살아남아 15년을 더 살았다는 가설입니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웠지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 환멸을 느껴 자신의 죽음을 위장했다는 가설입니다 이 가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역사에서 국가장례로 치러진 이순신의 묘가 그로부터 15년 뒤 이장된 것이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조선의 역사에서 그 이후 이순신을 본 사람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당시 이순신은 명나라의 황제로부터 면사첩이라는 일종의 면책증서를 받았기 때문에 이 가설의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판옥선 vs  왜선 비교하기

     

    먼저 당시 조선수군의 주력전함이었던 판옥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판옥선은 임진왜란당시 조선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던 주력전함입니다. 판옥선은 여러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공격에 유리한 높은 다층 전함이라는 것입니다.

    판옥선은 선실, 포판, 상포판으로  총 3층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높은 구조를 통해 조선군은 일본군을 내려다보며 전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일본군은 총으로 사격한 뒤 월선하여 백병전을 활용한 전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높은 구조를 가진 판옥선에 월선하는것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전해집니다. 두 번째는 평평한 바닥입니다. 당시 일본은 물의 저항에 유리해서 속도가 빠르지만, 구조가 약한 세키부네라는 전함을 주력전함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세키부네는 바닥이 뾰족한 첨 저 선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판옥선은 바닥이 평평하였기에 속도는 세키부네보다 느렸습니다. 하지만 좌우로 선회하는 능력이 뛰어나 적을 공격하는데 안정적이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주력전함이었던 세키부네는 일본군의 전술을 잘 표현하는 함선입니다. 일본군은 정확한 조준사격보다는 그들이 자랑하는 백병전을 주력 전술로 전투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빨리 다가가 다른 배에 자신들의 군사를 월선시 켜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바닥을 뾰족하게 만들어 속도를 빠르게 했다고 알려집니다. 하지만 세키부네는 암초가 많았던 조선의 바다에서 최악의 활용도를 보여주는 함선이었습니다. 속도는 빠르지만 안정적이지 않아 많은 암초에 걸려 파괴되었고, 속도를 못 이겨 자신들끼리 부딪혀 침몰하는 경우도 많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세키부네는 삼나무와 전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강도가 소나무보다는 약하였습니다. 판옥선은 강도가 훨씬 강력했던 소나무로 제조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충돌에 강했고 해체 후 수리도 훨씬 더 쉬웠다고 전해집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