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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도의 대표포스터
    영화 사도의 대표 포스터

     

     

    목차

    1. 영화 <사도>의 스토리라인

    2. 당시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한중록의 기록

    3. 아들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의 스토리

     

     

    영화 <사도>의 스토리라인

     

    41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늦둥이를 본 영조는 이산을 매우 총애하여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왕세자에 책봉합니다. 이산은 두 살 때 천자문을 외우고 매우 어린 나이에 비범함을 뽐냈습니다. 그렇기에 이산에 대한 영조의 기대는 높아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영조의 기대와는 달리 세자는 성장하면서 공부보다는 그림과 무예에 두각을 타나 냅니다. 이러한 세자의 모습에 영조는 크게 실망하게 되고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세자를 꾸짖습니다. 세자가 성장하자 영조는 왕위를 물려주려 하는데 이는 자신의 세력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조는 왕위를 물려주는 것을 반대하는 대신들에게 대리청정을 제안합니다. 그로 인해 세자는 왕의 업무를 대신하여 맡는 대리청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조는 사도세자가 하는 정치에 꾸준히 관여하며 훼방을 놓습니다. 또한 그가 소신 있게 행동한 것은 꾸짖고, 의논을 하려 한 것은 그것도 혼자 해결 못하냐며 혼냅니다. 이러한 영조의 태도에 사도세자는 자신감이 매우 떨어져 결국 울화병이 생깁니다. 이런 힘든 시간이 흘러갈 때 사도세자는 아들을 얻게 됩니다. 이 아들이 훗날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정조입니다. 아들을 얻은 사도세자는 부푼 마음으로 영조에게 아들을 데려갑니다. 하지만 영조는 그마저도 차갑게 대합니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쌓여 사도세자는 정신병을 앓게 되고 더 나아가 아무 옷이나 입지 못하는 의대증까지 앓게 됩니다. 사도세자가 이렇게 힘들어할 때 영조는 자신의 아들보다 자신의 손자인 정조를 예뻐하게 됩니다. 정조는 어릴 때부터 매우 총명하여 영조의 높은 기대를 한 몸에 받습니다. 영조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내쫓기 위해 대신들을 모아 상소를 올리라 명령합니다. 명령이 내려진 지 얼마 후 노론의 김상론은 나경원을 사주해 사도세자의 악행과 행실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립니다. 상소를 전해 들은 영조는 깊은 분노를 하게 되고 사도세자를 또 한 번 내치게 됩니다. 사도세자는 결국 울화병이 폭발하고 자신의 아버지 영조를 살해하러 칼을 들고 궁으로 향합니다. 궁으로 향해 영조가 있는 침실까지 다가오지만 자신의 아들인 정조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을 돌리게 됩니다. 다음날 사도세자의 비행과, 전날밤의 역모가 세상에 드러납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대신들의 반대에 결국 뒤주를 가져오라 명령합니다. 결국 사도세자는 뒤주 안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뒤주에 갇힌 지 며칠 후 사도세자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영조는 그때서야 아들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고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의 모습을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한중록의 기록

     

    사도세자의 아내였던 혜경궁 홍 씨의 한중록이라는 문서를 보면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혜경궁 홍 씨는 영조와 그의 아들인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상세히 기록해 놓았는데 그 문서를 보면 상당히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됩니다. 영조는 천한 무수리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가 존재했습니다. 그렇기에 어린 사도세자가 자신의 뒤를 이어 우수한 왕이 되어주길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가까이하길 바랐던 희망과는 반대로 사도세자는 무술에 치중하게 되고 부자사이는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중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혜경궁 홍 씨는 영조의 교육이 불합리한 교육이었다고 지적합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영조는 대신들과 함께 국정을 의논할 때 사도세자를 불렀다고 합니다. 당시 사도세자는 10살 남짓 어린아이였는데 세자를 불러 대답할 수 없는 부분들을 물어봤다 합니다. 사도세자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영조는 대신들 앞에서 사도세자를 꾸짖었고 주눅 들게 했습니다. 또한 사람을 고문하거나 죽이는 등 나쁜 장면들이 있으면 항상 세자를 데려가 보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도세자는 마음의 병을 조금씩 얻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영조는 화협옹주와 사도세자를 유독 싫어했다고 전해집니다. 영조는 나쁜 일을 보거나 들으면 귀를 씻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불러 대화하고 나면 항상 귀를 씻었다고 하는데 이 모습을 본 사도세자는 깊은 슬픔과 비통함을 느꼈을 것이라 한중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혜경궁 홍 씨는 가장 큰 비극의 씨앗이 바로 대리청정에 있다고 말합니다. 대리청정이란 왕이 늙거나 아파 정사를 돌보지 못하였을 때 세자가 대신 국정을 통치하는 것을 뜻합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정치적 견해를 키워준다는 명분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합니다. 대리청정을 하면서 자그마한 일에도 크게 꾸짖고 화를 내니 사도세자는 혼자 결정을 못하게 되는 병까지 얻게 됩니다. 사도세자와 영조는 오해가 쌓여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한중록에 기록된 역사에 따르면 사도세자의 마지막 기둥은 어머니인 정성왕후와 할머니 인원왕후였다고 전해집니다.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 사도세자는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많은 의지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도세자의 보호막이자 쉼터 같은 존재로 사도세자를 도왔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어머니와 할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보호막이 사라진 사도세자는 점점 마음의 병이 깊어집니다. 한중록에선 보호막이 사라진 사도세자가 진짜 미쳐버리는 큰 계기가 바로 능소참배에 있다고 기록합니다. 능소참배란 임금이 능에 참배하러 갈 때 세자도 동행하는 행사인데 영조는 한 번도 사도세자를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날이 이어지다 드디어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정성왕후와 인원왕후의 능행을 함께할 것을 명령합니다, 사도세자는 자신의 보호막이었던 인물들이자, 자신이 가장사랑했던 존재들이었기에 능행에 따라가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기다렸던 능행이 시작되고 영조와 사도세자는 가마를 타고 묘지로 향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비가 내리게 되고 영조는 사도세자를 데려온 탓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꾸짖고 사도세자를 다시 궁으로 돌려보냅니다. 너무나 기대했던 능행이었기에 사도세자는 깊은 울화를 느끼게 되고 결국 미쳐갑니다. 한중록에서 사도세자의 마지막기록을 살펴보면 그가 옷을 입지 못하는 의대증과, 궁안 사람들을 살해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앓고 있었다고 나옵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이 쌓여 결국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만들었다 기록됩니다. 

     

     

    아들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의 스토리

     

    조선시대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알아보기 이전에 사도세자와 영조의 스토리에 대해 알려드리려 합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영조는 정빈이 씨와 혼인하여 효장세자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한 효장세자는 결국 10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영조는 깊은 슬픔에 빠져 지냈고 그가 41살이 되던 해 영빈 이 씨와의 사이에서 늦둥이 사도세자(이선)를 낳게 됩니다. 늦둥이를 본 영조는 사도세자를 너무나도 사랑했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자신을 이어 조선의 왕이 되길 희망했기에 그를 빠르게 세자에 책봉합니다. 그리고 세자수업을 시작합니다. 영조는 그가 학문에 힘을 써 어진 군주가 되길 희망했으나, 반대로 사도세자는 공부보다는 무술에 심취합니다. 그렇기에 문치주의를 갈망했던 영조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게 됩니다. 영조는 즉위할 때부터 자신의 목숨을 많이 위협받아왔습니다. 영조는 조선에서 중요시하던 정통성이 없는 왕이었습니다. 영조는 세 가지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첫 번째는 영조의 어머니가 천민계급인 무수리 출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장자승계와 같은 정통성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형을 죽였다는 오해를 가진 왕이었습니다. 영조는 경종이라는 형이 있었습니다. 경종은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하고 많이 아파 후계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영조는 경종을 대신해 국정을 돌보며 경종에게 완쾌하라는 의미로 감과 게장을 선물합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경종은 이 음식들을 먹고 삼삼하게 되고 영조는 형을 죽인 살인자라는 누명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게 됩니다. 세 번째는 노론이 즉위시킨 임금이라는 것입니다. 영조는 경종을 추종했던 소론에게 항상 목숨에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비집권세력이었던 노론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결국 노론에 의해 왕이 되지만 도움을 받았던 만큼 왕권을 위협받게 됩니다. 영조는 왕권에 집권했을 때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집중하며 하루하루 불안한 상황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41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낳은 사도세자가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너무나도 예쁘고 소중한 자식이었기에 태어나자마자 세자로 책봉하였는데 이것이 이 부자사이를 갈라놓는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보살핌과 사랑 안에서 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태어났을 때부터 세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동궁 전이라는 곳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은 경종의 궁녀들이 있던 곳입니다. 영조는 자신이 형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세자를 동궁 전에서 머물게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세자와 영조사이를 갈라놓는 또 하나의 씨앗이 됩니다. 그곳에서 사도세자는 바람과는 달리 무술과 미술을 배우며 성장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영조는 자신의 바람대로 성장하지 않은 사도세자를 점점 멀리하게 됩니다. 대리청정을 시키면서 돌이킬 수 없는 부자관계를 보냈고 결국 사도세자는 이 상황을 못 견뎌내게 됩니다. 폭력적이고, 역모를 저지르려 하는 사도세자를 영조는 결국 용서하지 않습니다. 영조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두게 됩니다, 뒤주 속에 갇힌 사도세자는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이렇게 조선시대 가장 비극적이었던 부자관계 스토리가 끝이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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